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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4일

산울에서의 첫 1년

by 석호 (준언빠)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친구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어렸을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대부분 좋고 그리운 기억들이 많다. 도시에서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늘 바쁜 삶을 살았고, 결혼하고 준언이가 태어나면서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생겼다. 준언이가 점점 커가고, 학교 교육은 더욱더 경쟁으로 치닫는 걸 보면서 준언이도 그 경쟁속에 살도록 두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시골이 그리워졌다. 시냇물 졸졸 흐르고 산과 들이 있는 시골이… 2014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강원도 부터 아래로 점점 내려와서 제주도까지 가는 2달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런 곳도 있네. 저런 곳도 있네. 여기서 살면 좋겠다. 그러면서 제주까지 내려갔다. 제주는 자연환경이 너무 좋았다. 시골 초등학교는 운동장마다 천연잔디가 깔려있다. 학생들도 전교생이 50명 남짓. 우연히 제주 남쪽의 집을 하나 보았다. 귤농사를 짓는 시골 마을이었다. 근처에 공립어린이집도 있고, 이쁜 초등학교도 있었다. 여기서 3식구가 살면서, 준언이는 초등학교를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연고도 없고 돈벌이 계획도 없는데도 아내에게 무작정 내려오자 했다. 우리는 그렇게 준언이가 4살때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



다시 도시로

3년간의 제주에서의 삶은 타지에서 연고도 없이 힘든일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하고 그리운 기억들이 많다. 늘 그곳이 그립다. 준언이가 작은 시골 학교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있었지만, 둘째가 태어나면서 우린 다시 도시로 오게되었다.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아프게되고 병원을 다니면서 다시 내려갈수가 없었다. 언젠간 가겠지 하다가 준언이는 유치원도 다니고 초등학교에도 입학하게 되었다. 둘째에게 집중하면서 준언이에게 우리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에서 한학기를 보내는 동안 많은 불편한 상황들을 보게되고 준언이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혼자 논다 했다. 이유는 모바일 게임을 하지 않아서 였다. 우리는 점점 현실과 타협했다. 준언이는 그 아이들의 세계에 녹아들었고 우리는 그것이 불편했다. 폭력을 쓰는 아이도 있었고 준언이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봐 두려웠다. 홈스쿨링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우리 환경에서는 쉽지 않아 보였다. 우연히 대야미에 초등 대안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얘기만 들어도 끌리는 학교였다. 다행히 머지않아 소박한 학교 설명회가 열렸다.



따뜻한 산울

처음 산울어린이학교에 갔을때 산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 대한 소개를 듣고 선생님들도 뵈었다. 몇몇 재학생 학부모들도 나와있었다. 내가 느꼈던 산울의 첫인상은 "따뜻함"이었다. 힘든 세상살이를 하다가 돌아온 집같은 느낌이었다. 이 학교를 준언이가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언이는 이미 다니던 학교가 좋았고 친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우리만 준언이를 불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야지 하면서도 아직 사리판단을 쉽게 못하는 나이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 두가지 생각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기도하면서 준언이를 설득해보기로 했다. "너가 지금 빠져있고 좋아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창조한 거야. 아빠, 엄마는 적어도 너가 어렸을때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들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겠어." 라고 얘기하며 게임과 티비 보는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워낙 자기 주장이 강하고 주도적인 아이라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행이도 쉽게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으리라. 그렇게 1학년 남은 학기를 보내면서 변화들이 생겨났다. 책을 더 가까이하고 이것저것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산울에 가야하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산울에 입학, 그러나 코로나

다니던 학교를 옮기는 준언이의 마음을 아직도 온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예민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몇몇 친한 친구들과 헤어지는게 많이 아쉬운듯 하다. 입학을 할때가 되자 코로나가 터졌다. 입학은 점점 미뤄졌고, 준언이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준언이는 학교도 안가고 집에 있으니 마냥 좋았지만, 나는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길어질 것만 같았다. 학교에 다니면서 빨리 적응하기를 바랬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보였다. 돌봄이 시작되고 나서도 준언이는 한동안 학교에 나가기 싫어했다. 선생님이 준언이도 한번 나와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주셨고, 준언이에게 얘기하니 한번 나가본다고 했다. 아마 집에서 노는 것도 지겨웠던것 같다. 그렇게 나가는 날이 하루이틀 많아지고 준언이는 학교를 점점 재미있어했다. 마침내 비대면 입학식이 이루어지고 영상으로 산울 가족의 따뜻한 환영도 받았다. 학교는 조심조심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소통을 하며 학교를 운영했고 지금까지 아이들은 큰 탈없이 지내고 있다. 작은 학교의 힘이리라. 입학하기전 준언이의 마음을 글로 표현한 것이 있다. 자유롭게 써보라고 했더니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질의응답형식으로 표현했다. “산울을 좋은 학교로 생각하나요?”의 답이 물음표 였다면 지금은 세모쯤 되었을까? 코로나와 함께 였지만 산울이 있었기에 힘들지 않게 보낼수 있었다. 선생님과 부모님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년이 기대된다!